
알립니다
공지사항 제2회 사회평론 스토리대상 심사평: 어린이 부문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회평론 작성일2025-07-02 조회조회수: 128회본문
스토리의 즐거움이 담긴 판타지, 세상에 없던 이야기를 찾아 나선 제2회 사회평론 스토리대상 어린이 부문에 올해도 100여 편이 넘는 이야기들이 도착했다. 어린이들의 손에 가닿을 한 권의 책이 되길 기다리는 수북한 원고를 넘기는 시간은 좋은 동화의 조건들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독서의 시간이 리듬감 있게 이어질 수 있는 사건의 배치, 독자가 마음을 줄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의미 있는 주제 의식, 작가 고유의 개성이 담긴 문체가 어우러진 즐거운 판타지 동화를 찾으려는 마음으로 심사위원들은 7편의 작품을 본심에 올렸다. 본심작들은 나름의 장점과 한계를 또렷하게 지녔기에 올해 수상작을 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특히 『서유구 연어』와 『젊어지는 샘물』을 놓고 마지막까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착한 아이 패러사이트』는 숙주를 착한 아이로 만드는 기생충을 퍼뜨리는 선생님과 그 배후를 찾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학교를 주무대로 하여 또래 집단의 권력관계, 생활 지도와 아동학대 사이의 경계에서 신고당하는 교사의 현실 등을 과학 지식을 기반으로 한 추리의 형식으로 다루고 있어 흥미로웠고, 학교 현장과 밀착한 시의성 있는 소재도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들이 착해졌을 때 그런 기생충을 퍼뜨리는 행위에 대해 아무런 갈등 없이 도덕적인 판단을 내리는 인물에게 현실의 독자가 얼마나 동일시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학급 내 권력 구도에 균열을 내는 새로운 인물에게 많은 역할이 부여된 점, 등장인물들의 정체가 드러나고 갑자기 속편을 예고하는 시리즈물의 느낌을 주는 장면이 전체 서사와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하는 점은 매우 아쉬웠다.
『아빠는 어디에』는 갑작스레 아빠와 단절되어 불안을 느끼고 아빠를 그리워하는 공통점을 가진 두 아이가 겪는 사건을 긴장감 있게 보여 준다. 두 인물 외에도 소리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동네 친구가 등장해 미스터리적 요소를 더한다. 갑작스러운 가족 해체로 인해 아이들이 느끼는 불안은 위험한 사건을 통해 증폭되고, 사건이 일단락된 후 동네 친구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미스터리도 해소된다. 그러나 그렇게 이야기가 끝날 거라 기대했던 독자에게는 그 이후에 덧붙여진 설정이 사족처럼 느껴질 것이다. 아빠가 왜 음주 운전을 했는지 주인공조차 납득하지 못한 채 급하게 마무리되는 서사의 끝부분은 이야기의 개연성을 떨어뜨리고 서사의 초점을 흐린다. 어디에서 서사의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또 최악의 생일』은 생일파티를 망치는 범인을 찾을 때까지 반복되는 타임루프 속에서 우정을 회복해 가는 이야기이다. 타임루프 장르의 전형인 영화처럼 이 작품에서도 ‘좋은 소원’을 빌었을 때 비로소 ‘내일’이 찾아온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지의 내일이 기쁘고 다행한 일임을 알려주는 결말은 밝고 따뜻하다. 다만 그러한 결말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변주되는 생일의 사건들이 갖는 의미나 재미는 다소 약하게 느껴진다. 매번 새로운 난관에 빠지는 주인공의 모습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독자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기보다는 반복되는 ‘오늘’을 설명하는 서술자처럼 느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의 아쉬움일 것이다.
『하루의 세계』는 첫눈이 오면 아이들이 동네 산에서 자신의 반려알을 찾는 전통과 관습을 소재로 ‘반려’의 깊은 의미를 보여 주는 이야기이다. 어렵게 찾은 반려알이 기대와 달리 작고 보잘것없어도 애착을 가지고 성실하게 돌보는 주인공의 모습은 ‘반려’의 의미를 깊이 있게 되새기게 해 준다. 단정한 문체 역시 사려 깊고 책임감 있는 인물의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 준다. 문체뿐 아니라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이 이야기를 일명 ‘철학 동화’에 가깝게 느껴지게 하는데 이야기의 주무대인 천수산의 이미지, 첫눈과 반려알의 전설, 서사 후반부에 주인공이 통과하는 시련, 그리고 무엇보다 시종일관 성숙한 태도로 반려알을 대하는 주인공의 선택은 이야기를 좀 더 추상적이고 계몽적으로 만든다. 아울러 천수산, 마흔아홉 번의 시련, 주인공과 비슷한 경험을 했던 이모 캐릭터는 한중일의 대중 매체에서 한 번쯤 본 것 같은 기시감을 주었다. .
『양갱할머니의 뒤죽박죽 시간 여행』은 미래의 ‘나’가 현재의 ‘나’에게 찾아와 시간 여행의 기회를 주는 이야기이다. ‘양갱할머니’라는 개성 있고 유머러스한 캐릭터를 생생하게 구현하여 대화의 잔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낮은 학년 어린이들을 위한 발랄한 동화의 맥을 잇는 작품이다. 시간 여행을 통해서 엄마를 이해해 가는 설정은 생활 동화의 익숙한 반경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주기도 하지만, 내포 독자의 연령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이에 대한 판단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설정상의 한계를 ‘타임 패러독스’로 마무리 짓는 후반부의 설정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이다.
『서유구 연어』는 투고작 가운데 분량이 가장 길었을 뿐만 아니라, 연어의 모천회귀 과정을 담은 서사답게 광활한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졌다. 작품에 등장하는 서유구는 정약용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받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조선시대 실학자이다. 그의 이름을 딴 ‘서유구 프로젝트’를 통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연어 회귀의 비밀을 3부에 걸쳐 담아낸 이야기는 독자들에게도 연어를 따라 긴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여운을 줄 수 있을 만큼 생생하게 서술된다. 연어의 험난한 여정을 담은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이 이야기를 우화에 가까운 동물담이 아니라 해양 생태계를 보여 주는 과학 동화에 가깝게 느껴지게 한다. 비슷한 성격의 에피소드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이렇게 긴 이야기가 서사의 맥을 놓치지 않고 연어처럼 무사히 돌아오는 것은 구체적인 묘사와 단단한 문장의 힘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연어들이 바다에서 만나는 해양 쓰레기와 환경 오염의 문제도 이 이야기에서는 계몽적인 목소리로 부각되어 하나의 주제 의식으로 도드라지기보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의 일부로 스쳐 간다. 메시지를 표 나게 드러내지 않는 이러한 무심한 언급이야말로 오히려 작품의 미덕이 될 수도 있다.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것은 그렇다면 이 작품이 장대한 서사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다. 서사의 초반부터 중심인물 ‘방울이’를 통해 환기되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탐구가 어떻게 귀결될지, 다른 연어들과 사뭇 다른 방울이의 신기한 능력을 어떠한 판타지적 장치로 풀어낼지가 심사의 마침표를 찍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다운 나’에 대해 알고 싶었던 방울이가 환상적인 설정 속에서 만난 자기 자신이 서유구 박사와 그 손자 서풍석 박사(인간)라는 설정은 단단한 필력으로 서사를 이끌어 온 과정이 무색할 만큼 동의하기 어려웠다. 방울이처럼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어린이 독자들에게 이러한 설정이 의미 있는 이야기로 다가갈지 의문이 들었다. 이 대목에서 서사의 무게 중심이 연어 회귀의 비밀보다는 실학자 서유구를 알리는 것으로 기울어지는 듯이 읽힐 수도 있어 아쉬웠다. 이런 의문과 아쉬움이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삼기를 끝내 망설여지게 했다.
『젊어지는 샘물』은 동명의 옛이야기 모티프를 통해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을 갈구하는 사회상을 반영한 이야기이다. 방송에도 출연할 만큼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 아빠, 연예인 친구, 미인대회 출신으로 시니어 모델로 활동 중인 할머니를 주인공 주변에 배치하여 서사 초반부터 외모에 대한 평가가 일상화되고 외적인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사회상을 담아낸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현대판 젊어지는 샘물 ‘백세수’는 인간의 욕망과 윤리적 선택 사이의 딜레마를 촉발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옛이야기 모티프를 판타지적 설정으로 활용하여 인간의 오래된 욕망과 당대의 세태를 연결 지어 서사를 안정적으로 끌어가는 점이다. 다만 표현과 서술의 층위에서 동화보다 청소년 소설의 문체에 가깝게 느껴지는 서사 도입부, 주인공의 가치관이나 선택을 통해 주제 의식이 구현되는 설정에 의해 캐릭터가 가진 특성의 일부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지점들은 아쉬웠다. 그러나 자신을 낳기 위해 치료 대신 출산을 선택한 엄마에 대한 그리움, 예스럽고 따뜻한 것들을 알려 준 할아버지와의 추억, 주제 의식을 구현해 가는 또 다른 캐릭터로 등장하는 반려견 비너스의 서사적 역할을 통해 뒤로 갈수록 그러한 아쉬움을 해소해 가는 점, 옛이야기에 담긴 옛사람들의 지혜를 자연스럽게 현대화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는 점, 특정 젠더에게 아름다움과 젊음에 대한 요구와 강박이 더 많이, 더 일찍부터 작용하는 현실을 염두에 둘 때 주제가 가진 시의성의 무게가 크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대상으로 최종 결정했다. 다만 『서유구 연어』를 수상작으로 정하지 못한 아쉬움과 고민을 감안할 때 올해 어린이 부문에서는 우수작을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며 속도감 있게 책장을 넘기게 하는 일명 ‘페이지 터너(page-turner, 책장 넘기기가 바쁘게 흥미진진한 책)’가 반드시 좋은 동화는 아니지만, 적어도 본심에 오르고 책이 되기 위해서는 가독성은 중요한 요소이다. 독자들의 손을 잡고 자신이 쓴 이야기를 끝까지 읽고 싶게 만드는, 그러면서 의미 있는 이야기를 건네주는 작품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심사평 역시 어디선가 어린이를 생각하며 작가의 길에 서 있거나 서고자 하는 창작자들에게 의미 있는 글이 되기를 바란다. 제2회 스토리대상 수상작이 어린 독자들이 살아갈 미래 사회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뜻깊은 책이 되길 바라며 수상자들에게는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어린이 부문 심사위원 : 김경연 아동·청소년 문학 평론가, 남지현 아동문학평론가(대표 집필), 윤자영 작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